[이광석의 디지털 이후] 인권보호의 딜레마
등록일 2020-04-24 08:21:59 트위터로 보내기 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쪽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문의를 받지않습니다 프린트하기

코로나 공중보건 비상사태 속 기술감시와 인권보호의 딜레마

그래픽 | 현재호 기자

그래픽 | 현재호 기자

국가의 통제 욕망을 부추기는
감염병 확산 조기 차단 ‘조급증’

아직은 백신이 부재한 상황서
위치 추적·이동 동선 알림 앱 등
테크놀로지의 효능은 커다란 유혹

‘팬데믹’ 예외상황에도 감시기술은
정보인권·공공의료 정신에 어긋나
제한적 활용을 원칙으로 삼아야

 

4월11일을 기점으로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10만명을 훌쩍 넘겼다. 코로나19 방역 대응 방식에 따라 국가별 피해규모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해당국 정부의 리더십과 보건당국의 방역 대처 방식, 공공의료 기반시설, 의료 장비와 음압병실 등 의료 자원의 수급, 시민 공동체의 공동방역 대처, 감염 진단 테스트 능력, 접촉자 동선추적 기술 등 국가별 대처 요인들에 따라 코로나19 방역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빠르고 공격적인 코로나19 진단검사와 바이러스 확산의 조기 차단에 힘입어 전 세계적으로 성공적 방역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문제는 모범적인 국가 방역 사례로서의 사회심리적 중압감이 커지면서 감염 확산을 조기 차단하고 일상 ‘생활방역’체제로 돌아가기 위한 조급증에 있다. 그럴수록 좀 더 강하고 효과적인 시민 통제 장치들의 도입을 향한 유혹에 쉽게 빠진다. 감염병 비상의 ‘예외 상태’는 무리해서라도 이를 신속히 통제하고자 하는 국가 욕망을 부추긴다. 미국만 하더라도 ‘9·11테러’ 이후에 소위 대테러 방지를 위한 ‘애국법’을 통과시켰고, 이를 통해 사회적 감시 기제를 전 방위에 걸쳐 합법화하면서 인권 피해의 상흔을 곳곳에 남겼다. 오늘 코로나19 팬데믹이란 전 지구적 위기의 예외상황에서 우리 국민의 생명보호와 안전논리가 사회 유지의 절대명제가 돼버리면, 설사 어떤 장치와 제도의 도입이 인권침해 소지를 지닌다 하더라도 묵인하거나 필요악으로 여기는 경우가 쉬 발생할 수 있다.

 

■ 재난 기술의 과잉 상태

각종 첨단 과학기술이 도처에서 감염병 방역의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다. 바이러스 검진 기술, 살균이나 폐기물 운반 등 로봇 의료장비 기술, 글로벌 감염 확산 예측 시뮬레이션 기술, 동선 파악 위치추적 기술 등이 감염위기 상황에 폭넓게 응용되고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19의 빠른 확산과 전파 경로를 차단하기 위한 위치정보 제공 및 위치추적 테크놀로지의 기능과 역할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흔히 알려진 것만 해도, 자가격리자 위치추적과 건강상태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을 위해 행정안전부가 개발·보급한 ‘자가격리 안전보호앱’, 시민이나 기업에 의해 제작된 공적 마스크 재고 현황 알리미, 확진자 이동 동선과 확진 분포를 안내하는 코로나알리미와 코로나 지도, 신천지 교인이나 근처 확진자 위치알림 서비스 등 위치 기반 스마트폰 앱 기술들이 출시돼 쓰이고 있다.

대감염 문제를 해결할 백신이 아직 부재한 세계에서, 우리에게 기술적 해결책은 커다란 유혹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강제 봉쇄조치 없이 자유로운 신체 이동권이 허용되는 개방적 방역 통제 방식을 취하는 우리의 경우 테크놀로지의 부작용과 위험을 알면서도 그 효능에 의존하기 십상이다. 지난 2월경부터 시작된 감염자 동선 추적 과정에서 ‘○○번’ 확진자의 개인 방문 장소와 시간대 공개를 아주 구체적으로 명시하면서 사생활 노출 문제가 차츰 불거지기 시작했다. 3월에는 감염 공포가 좀 더 확대되고 지역 확진자의 구체적 신상 등 필요 이상의 개인정보가 인터넷에 노출되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었다. 특정 감염자에 대한 개인 신상정보 노출은 인권침해 요인과 함께 특정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찍기나 혐오를 조장하는 2차 피해를 동반했다. 더구나 지방자치단체별로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해 확진자 동선 등 정보공개 수위에서 혼선을 빚거나 개인정보의 해석 범위가 달라 개인 식별이 가능한 정보까지 노출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당시 방역당국이 곧바로 정보공개 범위에 대한 지침을 내놓으면서 사태가 진정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감염병 위기상황이 길어지면서 기술 억압의 밀도는 오히려 깊어지는 추세다. 4월11일 정부는 급기야 방역 수위를 높여 더 논쟁적인 위치추적장치를 도입했다. 4만여명 수준으로 늘어난 자가격리자 가운데 장소 무단 이탈자에 한해, 신체 위치추적장치인 소위 ‘안심밴드’를 본인 동의하에 착용하도록 조처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존 자가격리 안전보호앱은 당사자 동의에 의해 설치돼 그 효과가 고르지 않고, 자가격리 중 위치추적 스마트폰을 두고 다니는 이탈자 또한 발생해 위치 감시가 수월하지 않다는 점을 이 신생기술 도입의 근거로 삼고 있다. 정부는 ‘안심밴드’ 도입 외에도 기존 자가격리 보호 앱의 기능 또한 일정 시간 사용중지일 때 동작을 감지하는 센서 기능 등을 추가하고, 물리적으로는 매일 전화 모니터링 확인이나 불시점검을 더 강화하도록 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정부의 자가격리 무단 이탈자들의 ‘안심밴드’ 도입에 대한 일반 시민 대상 설문에서, 열 중 여덟은 ‘찬성’표를 던졌다. 비상사태 속 시민들의 사회불안 정서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는 효과이리라. 비상시국에 공동체의 안전과 이를 위협하는 잠재적 원인의 효율적 예방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범죄자가 아닌 일반 시민에게 위치추적장치를 착용하게 하는 일은 역사적 선례가 없는 인신 구속의 치명적 감시기제인 데다 이렇다 할 법적 근거 없이 도입이 결정된 데 문제가 크다. 더군다나 자가격리 위반에 대한 강제 벌금 혹은 형벌을 통한 처벌 조항이 법리적으로 마련되어 있고, 강화된 안전보호 앱 설치와 물리적 모니터링이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관리상황인데도 이 논쟁적 기술 도입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정부에 의한 ‘전자팔찌’ ‘전자손목밴드’에서 ‘안심밴드’로 빠르게 순화된 공식 명칭 변경만큼이나 위법 논란이 큰 신체 결합형 위치추적장치를 도입한 것은, 방역 조기 종식에 대한 조급증의 발로이자 시민들의 불안을 제도적으로 오용하는 효과와 다름없다. ‘안심밴드’와 같은 민감한 감시기술의 도입은 당장에 신체 훈육과 구속의 인권침해 소지도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코로나19 이후 일상적인 대민 신체통제 기법으로 흔해지거나 고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 위치추적 기술의 딜레마

국내 감염병 예방법에 따르면, 감염(의심)자 개인정보 수집과 위치정보의 수집 범위나 정도가 보건당국 및 지자체 수장의 권한과 판단에 의해 전적으로 좌우된다. 중앙·지자체 정부 모두 감염자는 물론이고, 감염 의심자나 접촉 의심자, 자가격리자까지 신용카드 사용명세, 진료기록부, CCTV 기록, 휴대전화 기록, 상세 위치정보 등을 합법적으로 폭넓게 수집하고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게다가 방역당국은 기술적으로 이들 데이터를 폭넓게 수집해 통신사, 신용카드사, 경찰 시스템을 연계한 감염자 위치정보 파악 시스템을 개발해 수분 내 확진자 동선을 파악할 수 있는 분석 능력까지도 갖추게 됐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감염(의심)자에 대한 초감시 능력은 국제적으로도 꽤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감염이 확산일로에 있는 해외 많은 나라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비상사태를 맞이해 위치추적 기술을 동원해 효과적으로 감염 통제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물론 국가별로 인권침해 논란이 큰 위치추적 감시기술 장치의 도입과 그 수위에서 정도 차이를 지닌다. 기술적으로 우리보다 좀 느슨한 기술 적용의 사례로는, 싱가포르 정부가 개발한 ‘트레이스 투게더(Trace Together)’란 확진자 추적 앱을 들 수 있다. 이 앱은 65만명의 자발적 가입자들 사이 근거리 블루투스 접촉의 자동생성 기록을 활용해 확진자 발생 시 전자 접촉기록을 감염 역학조사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대만은 우리와 가장 유사한 기술 사례로 볼 수 있다. 즉 자가격리자에 대한 철저한 위치추적 앱 관리와 더불어 보건당국에 의한 전화 감시 모니터링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자가격리자가 자신의 위치정보와 함께 인증 ‘셀피’를 수시로 찍어 방역당국에 제출하거나 경찰의 긴급 순찰 방문에 응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최근 정보기관인 신베트가 법원의 영장 없이 휴대전화 정보를 수집해 감염자 위치추적을 시작했다.

우리보다 훨씬 기본권 침해 소지가 더 크고 강압적인 기술 사례도 있다. 이미 홍콩 자치정부는 한국보다 먼저 자국에 입국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자 손목밴드와 스마트폰 위치추적 앱을 의무화했고, 자가격리 이탈 시에는 보건당국과 경찰에 즉각 통보해 조처하고 있다. 중국 후베이성의 6000만명에 달하는 인구 관리는 이보다 좀 더 전체주의적이다. 중국 정부는 후베이성에 대한 물리적 봉쇄 해제 이후에도 위챗 등의 도움을 받아 소위 ‘녹색건강코드 시스템’을 도입했다. 구체적으로는 주민들의 코로나19 확진 노출 위험군 정도를 녹·황·적의 스마트폰 관리코드로 달리 매겨 이들의 거주이동 자유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우리의 공격적인 진단키트 검사 방식을 앞다퉈 도입하려는 데 반해, 감염 동선 위치추적 방식 도입에 대해서는 판단이 꽤 갈린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이탈리아, 프랑스 등은 기본권 침해 소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효과적 방역 선례를 학습해 스마트폰 위치정보를 활용한 감염자 동선 파악 방식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반면 독일에서는 한국식 확진자나 접촉 의심자의 위치추적 기술과 이동 동선 파악의 방역활동 방식에 크게 회의적이다. 독일 정부는 위치추적 기술을 근본적으로 개인 기본권 침해로 바라보면서, 화급한 방역과 생명보호라는 위기상황을 빌미로 기본 인권을 거래한다면 궁극에는 민주주의의 기초가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한다.

 

■ ‘방역 모범국가’의 길

앞으로 코로나19 국면 속 생명보호와 인권보호의 딜레마에 대한 국가별 대처 방식과 능력이 한 나라 정치 수준이나 민주주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리트머스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처럼 우리의 안정적인 방역체제가 빛을 발하려면 이웃나라들의 외부 시선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근본적인 인권보호 원칙을 함께 담보해야 한다. 적어도 감염 재난 특별조치나 명령발동의 경우에 그 범위나 시기 제한을 명시하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종료할 것, 모든 국민들이 그 내용을 인지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널리 공표하고 문서화할 것, 확진자와 사망자 등 감염통계 정보를 정확하고 투명하게 공개할 것, 감염정보 수집의 목적 제한 명시와 함께 개인정보 수집과 활용의 ‘최소주의’ 원칙을 지킬 것, 감염(의심)자의 민감한 개인식별 정보를 공개하거나 누출하지 않을 것, 감염위기 종료 시 개인정보를 완전 파기할 것, 보편적 인권침해의 소지가 큰 감시기술 도입의 경우에는 프라이버시 혹은 정보인권 전문가를 포함한 관련 감독기관의 안전 지침 아래 제한적으로 활용할 것을 사회의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감염병 위기라는 예외상황이라 하더라도 이제까지 위치 데이터 추적 기술의 도입과 활용이 정보인권과 공공의료 정신에 크게 위배된다는 점을 반박하기 어렵다. 생명 안전과 인권 사이 딜레마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감염인구 관리 통제와 효율성의 안전 가치가 인권에 앞서 위세를 부리고 당연시될 공산이 크다. 감염병 팬데믹이 새롭고 일반적인 전자 감시권력의 사회 안착을 위한 명분이 되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기술숭배에 기댄 사회통제 논리의 확산을 막고 감염병 관리의 민주적 원칙을 세우는 차원에서라도, 감염 환자와 자가격리자의 정보인권 보호에 소홀함이 있는지, 우리의 재난 대응용 기술 도입이 이웃 국가들에 비해 인권 측면에서 뭐가 문제일지, 시민 기본 인권을 보장하는 감염 재난 대응의 최선책이 무엇일지에 대해 시민사회 주도의 성찰적 논의가 필요하다. 진정 ‘방역 모범국가’의 타이틀을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목표로 삼으려면 이제부터라도 방역과정에서 다칠 수 있는 시민들의 기본권리 보장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더욱 요구된다.

 

▶필자 이광석
 

[이광석의 디지털 이후](17)방역 모범국가의 ‘안심밴드’ 빅브러더의 시작 될 수 있다


이광석은 테크놀로지, 사회, 문화가 서로 교차하는 접점에 비판적 관심을 갖고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 전공 교수로 일한다.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공동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테크노문화, 인류세, 포스트휴먼, 플랫폼과 커먼즈, 비판적 제작문화에 걸쳐 있다. 대표 저서로 <데이터 사회 비판> <데이터 사회 미학> <뉴아트행동주의> <사이방가르드> <디지털 야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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