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간녀, 욕먹으며 사랑받는 스타들
등록일 2020-04-24 03:24:35 트위터로 보내기 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쪽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문의를 받지않습니다 프린트하기

한소희 김서형 김희애, 손가락질당해도 배우로 성장

사진제공=JTBC
사진제공=JTBC

상간녀(相姦女).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최근 8회 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한 종합편성채널 JTBC 금토극 '부부의 세계'(극본 주현, 연출 모완일)의 인기와 더불어 이 단어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부부의 세계'에서는 주인공 지선우(김희애)의 남편인 이태오(박해준)와 바람을 피는 여다경(한소희)이 상간녀로 등장한다. 그런데 여다경은 욕을 먹지만,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 한소희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대중은 많은 상간녀를 만났다. ‘불륜 불패’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불륜을 소재로 한 치정극은 인기가 높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항상 공분을 자아내는 상간녀가 있었다. 하지만 상간녀는 손가락질을 받은 반면, 그 역할을 소화한 배우들은 주목받았다. 왜일까?

#그 시절, 우리가 마주했던 상간녀


아직도 대중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는 상간녀로 단연 SBS 일일극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김서형)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주인공 구은재(장서희)의 동갑내기 친구였다. 결국 신애리는 부잣집으로 시집 간 구은재에게 부러움을 넘어 질투를 느끼다가 그의 남편 정교빈(변우민)을 유혹해 그의 가정을 파탄냈다.
 
신애리가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민소희로 돌아온 구은재를 향해 "민소희 나와! 죽여버릴거야~!!"라고 악다구니하는 장면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이 역을 소화한 배우 김서형은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너무 센 캐릭터였던 터라 오히려 시장의 외면을 받기도 했다. 김서형은 KBS 2TV '연예계중계'와 가진 인터뷰에서 "'아내의 유혹' 끝난 후 스타병이 있었다. CF도 많이 찍고 주연도 하겠지 했는데 3개월이 지났는데 아무것도 없더라"라고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이후 JTBC'SKY 캐슬'에 이어 최근 SBS '아무도 모른다'를 성공적으로 마치며 탄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김서형, 사진출처=방송캡처
김서형, 사진출처=방송캡처


2007년작인 '내 남자의 여자'의 이화영(김희애) 역시 희대의 상간녀였다. 그는 고등학교 동창인 김지수(배종옥)의 남편을 뺏은 후에도 뻔뻔하고 당당한 인물이다. '청춘의 덫'과 '모래성' 등을 통해 대한민국 드라마 시장에 불륜 DNA를 심은 김수현 작가가 야심차게 내놓은 이 드라마는 상간녀가 오히려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라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방송 당시 논란과 화제의 중심에 섰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화영을 배우 김희애가 연기했다는 것이다. '부부의 세계'에서는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뻔뻔한 상간녀 여다경을 보며 분노를 금치 못하는 그가 '내 남자의 여자'에서는 여다경과 같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분노유발자였다. 오히려 한동안 도도한 도시여성의 표상이었던 배우 배종옥이 남편과 동창의 불륜으로 인해 고통받는 조강지처 역을 맡아 ‘김희애와 배종옥의 캐스팅이 바뀐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상간녀가 모두 악녀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불륜 자체를 미화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행위를 ‘사랑’으로 바라보며 당위를 부여한 작품도 있다. 여성을 불륜의 피해자가 아니라 당사자로 그린 '애인'(1996)이 시초 격이다. 유동근의 파란 셔츠와 유명 OST로 기억되는 '애인'의 주인공은 운오의 아내인 명애(이응경)가 아니라 상간녀인 여경(황신혜 )이었다.


'애인'의 바통은 딱 20년 후인 2016년, 드라마 '공항가는 길'이 넘겨받았다. 주인공 서도우(이상윤), 최수아(김하늘 )는 기혼 남녀다. 둘의 만남은 명백한 불륜이다. 하지만 서로에게 이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정한 이 작품은 ‘불륜극’이 아니라 ‘정통 멜로’로 포장됐고, 시청자들도 이를 받아들였다. 행위만 놓고 본다면 서도우-최수아는 상간남녀였지만, 이들은 그런 질타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결국 제작진이 불륜 남녀를 어떤 톤앤매너(tone&manner)로 그리고, 어떻게 대중을 설득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한소희, 사진제공=JTBC
한소희, 사진제공=JTBC




#왜 상간녀에게 관심이 갈까?


2000년대 이전 불륜극의 패턴은 대동소이했다. 외도하는 남편은 통상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아내는 그런 남편의 성공을 거들며 잘 내조하는 전업주부이자 현모양처였다. 하지만 그런 남편은 젊고, 예쁘거나 혹은 집안 좋거나 커리어우먼인 여성에게 눈을 돌린다. 그리고 세상 물정모르던 아내가 반격을 시작하고 권선징악으로 결말을 맺는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고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며 불륜극 역시 변모하기 시작했다. '부부의 세계'처럼 능력있고 강단있는 여성이 스스로 배우자의 불륜에 철퇴를 가하거나, '내 남자의 여자'나 '밀회'처럼 주인공이 불륜을 저지르는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상간녀라는 표현이 주는 어감과 이미지에 대한 부분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상간녀(相姦女)에서 ‘상’(相)은 ‘서로’를 의미한다. 혼자 저지르는 불륜은 없다는 의미다. 상간녀와 손바닥을 마주치는 상간남이 있어야 소리가 난다는 의미다. '부부의 세계'의 이태오, '내 남자의 여자'의 홍준표, '공항가는 길'의 서도우 모두 상간남이다. 그런데도 상간남보다는 상간녀라는 표현이 더 보편적으로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다수 불륜극에서 상간남은 조강지처를 버린 지질하거나 인간머리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청춘의 덫'의 강동우를 비롯해 홍준표, 이태오 모두에게 일말의 동정조차 사치였다. 그들은 처절하게 무너지고 죗값을 치러야 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상간남에게 대중은 관심조차 주길 꺼린다.


하지만 드라마 속 상간녀의 설정은 다르다. 한 드라마 외주 제작사 대표는 "대중의 욕을 먹을지언정, 상간녀 캐릭터는 가정이 있는 남성이 혹할 정도의 매력을 가진 배우를 섭외해야 한다. 시청자들이 심정적으로 지지하지는 않겠지만, ‘저런 인물과 외도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매력 없는 인물을 섭외하면 그 불륜극은 실패"라며 "'부부의 세계'의 여다경 역은 비난받지만, 이를 연기하는 한소희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다. 이는 잘 된 캐스팅이라는 증거"라고 말했다.

 
사진제공=JTBC
사진제공=JTBC



그래서일까? 한소희 이전에 김서형, 또 다른 불륜극인'VIP'의 표예진 등이 상간녀 임에도 주목받았고, 김희애·황신혜·김하늘 등은 이미 주연급 배우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진 상황 속에서 상간녀 캐릭터를 맡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호평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는 동시에 그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웅변했다.





김희애는 '부부의 세계' 이전에도 '내 남자의 여자', '아내의 자격', '밀회' 등에서는 불륜의 당사자였다. 비슷한 톤을 가진 작품을 반복적으로 선택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오히려 ‘김희애의 불륜극은 왜 다른가?’라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불륜이라는 소재와 상간녀라는 캐릭터 자체는 대중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줄 수 없지만, 출연 배우와 제작진이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느냐에 따라 대중을 호응을 이끌어 낼 수는 있다는 의미다.


'부부의 세계'의 제작발표회에서 김희애는 '밀회'와의 유사함을 언급하는 질문에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지선우가 너무 여러가지 캐릭터를 갖고 있다. 촬영하다 보면 다들 복합적인 감성을 가진 지선우를 무서워하는 게 느껴진다. 배우로서 ‘이런 역할을 죽을 때까지 맡을 수 있을까’ 싶었다. 동시에 도전하는 게 보람이 있다"고 답했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불륜은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하지만 대중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불륜극은 손에 꼽을 정도다. 결국은 누가 어떻게 쓰고, 연출하고, 연기하냐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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