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 향상 손글씨 쓰기 ~
등록일 2020-04-11 09:34:51 트위터로 보내기 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쪽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문의를 받지않습니다 프린트하기

하루 천 자…손글씨 쓰기의 즐거움

손 글씨 쓰기는 뇌 신경을 자극해 기억력을 높여주고 집중과 몰입 훈련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하루천자’ 회원들이 쓴 여러 손 글씨들.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파우스트(우병현), 로빈슨 크루소(정연재). 오른손 왼손 번갈아 쓴 백석 시(박초연), 기미독립선언서(성환호),레테의 연가(선주성), 다산 정약용 시(이종호)의 일부분이다. 가로쓰기, 세로쓰기, 왼손쓰기, 한자 섞어 쓰기 등 다양한 시도가 눈길을 끈다.

손 글씨 쓰기는 뇌 신경을 자극해 기억력을 높여주고 집중과 몰입 훈련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하루천자’ 회원들이 쓴 여러 손 글씨들.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파우스트(우병현), 로빈슨 크루소(정연재). 오른손 왼손 번갈아 쓴 백석 시(박초연), 기미독립선언서(성환호),레테의 연가(선주성), 다산 정약용 시(이종호)의 일부분이다. 가로쓰기, 세로쓰기, 왼손쓰기, 한자 섞어 쓰기 등 다양한 시도가 눈길을 끈다.

디지털 중독 이기는 ‘소확행’
‘하루천자’ 동호인 모임 활발

좋은 문장 찾아 베껴 써보기
매일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얼마나 오래 갈까. 앞으론 어떻게 될까. 걱정들이 태산이다. 그래도 삼시세끼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아니 먹어야 한다. ‘밥심’으로라도 버텨야 하기에. 그래도 남아도는 시간은 어떻게 해야 하나. 대책 없는 고민은 정신 건강만 해친다. 온종일 뒹굴면서 유튜브 뒤지고 인터넷도 검색해 보지만 뱃살만 더할 뿐이다. 이럴 때 뭔가 새로운 취미 하나 만들어보면 어떨까. 돈 한 푼 들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할 수도 있다. 하루 천 자, 손글씨 쓰기다.

#. 글을 쓴다고 할 때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무엇인가를 베껴 적는 것도 쓴다고 하고 머릿속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쓴다고 한다. 보통은 글을 쓴다고 하면 후자를 말한다. 끓어오르는 심상을 모으고 다듬어 시를 쓰고, 절절한 사연들을 버무려 소설을 쓴다. 하루하루를 돌아보며 일기를 쓰고 누군가에게 편지도 쓴다. 이 모든 창작 행위가 글쓰기다.

 

 

하지만 남의 글을 있는 그대로 베껴 보는 것도 창작 못지않게 의미가 있다. 좋은 문장을 옮겨 본다거나 마음 속 간절한 염원을 담아 성경이나 불경을 필사하는 것이 그런 경우다. 글자 모양 자체를 얼마나 아름답게, 정교하게 쓰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동양에서 예술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 붓글씨가 그렇다.

유교 문화권에선 지식인이자 선비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 붓글씨였다. 붓과 먹, 벼루와 종이 즉, 문방사우(文房四友)는 선비라면 그래서 늘 곁에 두어야 할 친구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필기도구가 붓에서 연필로, 만년필로, 편리한 볼펜으로 바뀌어 가면서 지필묵(紙筆墨)은 더이상 기록의 수단으로 생명을 이어가기 어려워졌다. 디지털 기기가 보편화되면서 이젠 연필과 볼펜조차도 아날로그 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스마트폰, 노트북, 태블릿PC 등 손 안의 컴퓨터가 많은 것을 대신하면서 손으로 직접 글씨 쓸 일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종이 문서들이 사라져가면서 서명까지 이젠 전자서명이 대체하고 있다. 까딱까딱 손가락만 누르면 모든 게 다 해결되는시대, 이제 현대인은 노소남녀 너나없이 디지털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 때론 삐딱한 사람이 시대를 먼저 열어간다. 대세를 거슬러 반대로 가는 사람이 더 앞서가는 경우도 많다. 아날로그 시대에 남보다 먼저 디지털을 발견하고 그 길로 내달렸던 사람들이 그랬다. 이와 반대로 디지털 만능시대에 굳이 아날로그로의 회귀를 주창하는 이들도 있다. 요즘 페이스북에서 한창 인기를 모으고 있는 ‘하루천자’라는 손글씨 쓰기 모임도 그 중의 하나다.

한국 IT기자클럽이 주도하고 있는 이 모임엔 유행을 거슬러 디지털 중독 탈출을 꿈꾸고 실천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들이 내건 구호는 ‘디지털 치매 예방, 인지증 예방, 집중력 향상, 명상 등을 위해 하루 천 자 손글씨 쓰기를 함께 하는 커뮤니티’다. 이 선언 속엔 인간의 편의와 자유를 위해 탄생한 디지털이 오히려 인간을 더 속박하고 있다는 역설에 대한 자각이 녹아 있다.

4월 9일 현재 회원은 모두 321명. 코로나19 사태로 바깥 활동이 줄어들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손글씨 쓰기 캠페인에 동참하는 사람도 점점 더 늘고 있다. 면면들도 다양하다. 언론인, 교수, 기업인, 장로, 서예가, 직장인, 주부, 학생에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까지 있다.

회원들은 동호회 이름 그대로 하루 천 자 쓰기를 실천하고 매일 인증샷을 올린다. 날마다 쓰지 않는다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실천을 독려하기 위해 관리자는 그날 그날 써야 할 글감을 정해 주고 함께 참여할 것을 권장은 한다. 최근엔 날마다 빠짐없이 참여한 회원에게 개근상과 함께 노트와 펜을 부상으로 주기도 했다.

글감은 동서고금 종횡무진이다. 기미독립선언서와 이상화, 김수영의 시를 썼다. 이태준의 ‘문장강화’ 같은 글쓰기 지침서도 쓰고 ‘그리스인 조르바’, ‘로빈슨 크루소’같은 명작 소설도 적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나 요리 레시피, 한시(漢詩), 일기 등 취향대로 뭐든지 쓰는 회원도 물론 있다. 요즘은 그 어렵다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도전하고 있다.

손글씨 캠페인을 처음 제안하고 앞장서 실천하고 있는 ‘하루천자’ 그룹 우병현(55) 회장은 최근 올린 글에서 손글씨 쓰기의 효용을 이렇게 일깨웠다. “필사는 인간이 문자를 발명한 이래 가장 오랫동안 사용해 온 독서법이자 학습법이었다. 수도원의 수사, 사찰의 학승, 향교의 유학자는 경전을 필사하면서 읽었다. 한 자씩 필사하면서 경전을 이해하고 암기하고, 또 의문을 던지고 대답하면서 뇌를 단련했다.” 그는 또 ‘나는 왜 쓰는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내 시간의 주인이고 싶어 쓴다. 나는 디지털의 개미가 되지 않으려 쓴다.”

#. 후배의 권유로 기자도 지난 달 하루천자 모임에 가입했다. 이후 짬짬이 손글씨 쓰기에 도전해 보고 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재미가 있다. 써야 할 ‘좋은 문장'을 찾기 위해 먼지 쌓인 책을 다시 들춰보기도 하고,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좋은 시나 에세이, 특별한 ‘말씀’들도 찬찬히 새겨가며 읽곤 한다. 꾹꾹 눌러 한 자 한 자 옮겨 적다 보면 30~40분이 금세 흐른다. 오랜만에 맛보는 집중과 몰입이다. 동시에 매일 좋은 글로 쌓여 필기 노트를 바라보며 느끼는 뿌듯한 성취감은 덤으로 누리는 기쁨이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작은 목표 하나라도 정해놓고 매일 꾸준히 실천하는 것 자체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천 자 쓰기가 부담스럽다면 백 자 쓰기인들 어떠랴. 박노해 시인은 그 정도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오늘은 ‘행복한 수학 공부'와 함께 그의 시 몇 편을 적어봐야 겠다.

 
행복한 수학 공부

-박노해

시인은 숫자를 모른다

수학도 계산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수학공부다

일_하루에 한 가지 이상 좋은 일을 하고
십_하루에 열 번 이상 크게 웃고
백_하루에 백자 이상 글을 쓰고
천_하루에 천자 이상 책을 읽고
만_하루에 만보 이상 대지를 걸으면

행복이 그대와 함께하리니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언제 행복할까
시인의 행복한 수학 공부 끝




손글씨 왜 좋은가

① 머리가 좋아진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특히 그렇다. 아직 읽고 쓰기를 배우지 않은 3~5세 아이들을 그룹을 나눠 타이핑과 손글씨를 먼저 배우게 하고 그 결과를 살핀 결과 손글씨를 배운 쪽이 더 빨리 글을 배우고 읽기 능력도 빠르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② 머리 굳는 것을 예방한다. 특히 중장년 이후 시니어들에겐 머리가 굳는 것을 더디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손을 정교하게 움직여 한 자 한 자 글을 쓰는 행동 자체가 고도의 집중력과 운동 신경 조절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뇌 활성화에 좋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③ 기억에 도움이 된다. 나이가 들면 책을 읽어도 돌아서면 가물가물하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직접 써 보면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다. UCLA 연구팀은 ‘펜은 키보드보다 강하다(The pen is mightier than the keyboard)’라는 연구에서 이를 입증했다. 강의 내용을 노트북에 타이핑으로 기록한 학생과 공책에 받아 적은 학생들을 비교한 결과, 노트 필기를 한 쪽이 더 많은 내용을 기억하고 성적도 좋았다고 한다.

어떻게 시작하나

① 노트를 준비하고 한 곳에 꾸준히 써 간다. 좋은 문장, 좋은 내용의 글을 음미하며 옮기다 보면 영혼도 살찌고 표현력도 향상된다.

② 필기구는 너무 매끄러운 볼펜보다는 속도나 획 굵기를 조절할 수 있는 수성펜이나 중성펜이 좋다. 글을 쓸 때 사각사각 느낌이 나는 만년필을 써 보는 것도 좋겠다. 멋도 있고.

③ 글감은 취향대로 선택하면 된다. 좋은 시나 산문은 문장력을 키우는데 너무 편향된 내용이 아니라면 신문 칼럼도 글의 구성이나 사고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신앙인이라면 나름의 기도 제목을 생각하며 성경이나 불교 경전을 써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영어나 한자로 된 것에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④ 천천히 쓰자. 정신을 집중해 한 자 한 자 정성껏 쓰는 게 좋다. 급히 천 자 채우는 게 목적이 아니다. 평소 자신의 필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이번 기회에 필체를 바꿔볼 수도 있겠다.

⑤ 페이스북 ‘하루천자’ 모임에 가입, 함께 쓰는 것도 방법이다. 나태해지는 것을 막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격려, 자극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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