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다녀왔습니다' 끊이지 않는 구설
등록일 2020-05-04 04:49:53 트위터로 보내기 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쪽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문의를 받지않습니다 프린트하기

KBS 2TV 주말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를 둘러싼 구설이 끊이지 않는다. 여성 성상품화에 이어 양육비에 대한 편견을 조장해 시청자 게시판이 들끓었다. KBS 제공

KBS 2TV 주말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를 둘러싼 구설이 끊이지 않는다. 여성 성상품화에 이어 양육비에 대한 편견을 조장해 시청자 게시판이 들끓고, 성 고정관념을 고착시키는 대사는 물론 외모 칭찬을 빙자한 성희롱이 난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청자들은 “시청률 1위 자리를 고수하는 KBS 주말극의 고질병”이라며 비판했다.

<한 번 다녀왔습니다>는 드라마 <아는 와이프> <오! 나의 귀신님> 등을 집필한 양희승 작가가 극본을 쓰고 <아버지가 이상해> <솔약국집 아들들> 등 ‘주말 드라마 강자’로 불리는 이재상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자식 넷이 모두 이혼한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로, 제작진은 “‘이혼도 유행이 된 시대’ 라는 신문기사의 헤드라인이 단초가 된 드라마”라고 소개했다.

지난달 18일 방송에는 유흥업소를 운영하던 강초연(이정은)이 김밥집을 개업하는 모습이 담겼다. 시청자들은 여성을 성적 상품으로 보는 유흥업소 논리가 문제의식 없이 공영방송 주말극에 등장했다고 비판했다. KBS 제공

문제는 시대상을 담았다는 소개가 무색할 만큼 구시대적인 설정이다. 먼저 ‘김밥집’이 논란이 됐다. 지난달 18일 방송에는 유흥업소를 운영하던 강초연(이정은)이 김밥집을 개업하는 모습이 담겼다. 짧은 치마에 진한 화장을 한 여성 직원들은 ‘폭탄주’를 만들 듯 사이다를 따르고 나눠줬고, 남성 고객들은 이같은 접객 행위에 ‘홀린 듯’ 가게로 들어섰다. 고객 중엔 교복을 입은 청소년도 있었다.

시청자들은 여성을 성적 상품으로 보는 유흥업소 논리가 문제의식 없이 공영방송 주말극에 등장했다고 비판했다. 드라마는 남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김밥집 풍경을 밝고 경쾌한 배경음악과 함께 보여줬다. 한 시청자는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KBS는 그 흐름을 역주행한다. 여성의 성상품화·성접대를 당연하게 여긴다”고 항의했다.

송가희(오윤아)가 양육비로 식사 비용을 결제하는 장면. 양육비를 ‘집에서 놀고먹어도 따박따박 들어오는 돈‘으로 묘사하고, 양육비를 개인의 과시를 위해 쓰는 등 현실을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설정이란 비판이 나왔다. KBS 제공

같은날 방송된 또 다른 장면도 논란에 휩싸였다. 양육비를 두고 “집에서 놀고 먹어도 양육비 따박따박 들어와” “남자가 있으면 뭘해. 전 부인이랑 자식한테 월급이 댕강 잘려나가는데” 같은 대사가 문제가 됐다. 양육비해결총연합회는 지난달 29일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인 양육비를 단순히 재미를 위한 설정의 소재로 사용하면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내용을 방영했다”며 “해당 방송분에 대한 빠른 시정과 공식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왜곡된 성 고정관념이 드러난 장면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김밥집과 시장 여자 상인들의 관계를 적대적 관계로 그리는 장면에선 ‘여자의 적은 여자’와 같은 여성혐오 프레임이 쓰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상인들은 김밥집 직원들을 보며 “밥집에서 허연 살을 내놓고. ‘나가요’도 아니고 정말” 등의 말을 하고, 남자 상인들은 그런 여자 상인들을 보며 “여자들은 어떻게 공공의 적만 생기면 그렇게 잘 뭉치나 몰라. 평소엔 은근히 씹어대면서”와 같은 대화를 나눴다.

김밥집과 시장 여자 상인들의 관계를 적대적 관계로 그리는 장면에선 ‘여자의 적은 여자’와 같은 여성혐오 프레임이 쓰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KBS 제공

맞벌이를 하는 딸에게 엄마가 “(사위) 얼굴이 퀭한 게 잘난 인물이 죽더라. 니가 너무 안 해 먹여서 그런가 어찌나 민망하던지. 신경 좀 써라”고 말하기도 했다. “딸들은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니까” “뭔 여자가 고집이 고래심줄 같냐” 등의 대사도 매회 빠지지 않았다. 외모 칭찬을 빙자한 성희롱 발언도 난무했다. 남성 직원을 향해 “근무 환경이 진작에 이랬어야한다” “다음생에는 저런 남자랑 꼭 살아봐야지” 같은 대사가 나왔고, 여성 캐릭터를 향해서도 “얼굴만 미인이신가 했는데, 밥 비비는 솜씨는 더 죽이시는데요?” 같은 대사도 있었다.

KBS 주말극은 ‘시청률 보증수표’로 불리지만, 출생의 비밀, 불치병 등 자극적인 소재로 막장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KBS 제공

KBS 주말극은 ‘시청률 보증수표’로 불린다. 주로 가족 공동체를 다룬 드라마가 편성되며, <내 딸 서영이> <넝쿨째 굴러온 당신> <황금빛 내 인생> <하나 뿐인 내편> 등 시청률 40%대 드라마들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높은 시청률과 더불어 출생의 비밀, 불치병 등 자극적인 소재로 막장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또 전통적인 가족주의만을 강조하는 등 구시대적이란 비판도 매번 반복됐다. <한 번 다녀왔습니다> 역시 송영달(천호진)과 강초연이 출생의 비밀로 얽힌 사이임을 암시하면서 뻔한 전개를 예상케 했다.

시청자들은 “참고 보는 시대가 지났다”고 말한다. 특히 부모와 함께 가족극을 시청하는 여성 시청자들 비판이 거셌다. 대학생 이한나씨(23)는 “함께 드라마를 시청하던 부모님도 저 장면 ‘문제있지 않냐’는 말을 할 정도”라며 “시대가 변해도 KBS 주말극만 그대로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모씨(32) 역시 “과거엔 ‘엄마가 보는 드라마’라고 생각해 문제적 장면이 나와도 그냥 넘겼다”며 “이제는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쓰고 SNS로 사람들과 같이 비판하는 등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그러면서 “주말극이 높은 시청률만큼 책임감 있는 드라마를 만들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