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디엇, 어퍼웨어. 코로나 시대의 신조어들
등록일 2020-05-01 00:58:29 트위터로 보내기 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쪽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문의를 받지않습니다 프린트하기

코비디엇, 어퍼웨어…코로나 시대의 신조어들

 

중국의 후베이성 우한시에 있는 동풍 혼다 (Hongfeng Honda) 자동차 공장에서 직원들이 간격을 벌인 채 점심을 먹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의 후베이성 우한시에 있는 동풍 혼다 (Hongfeng Honda) 자동차 공장에서 직원들이 간격을 벌인 채 점심을 먹고 있다. AFP|연합뉴스.

 

위기의 시대엔 신조어들이 떠오른다. 위기를 설명하고 이에 맞설 표현들이 부상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신조어가 다수 등장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독일 dpa통신 등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장 대표적인 신조어는 ‘코로나(covid19)’다. 미국 메리엄-웹스터 사전에는 이미 지난달 코로나, 감염추적(contact tracing), 지역전파(community spread) 같은 단어가 등재됐고 이번달에도 자가격리(self-isolate), 물리적 거리두기(physical distancing), 집단면역(herd immunity) 등을 새롭게 추가했다. 재택근무(WFH: working from home), 개인보호장비(PPE: personal protective equipment) 등과 같은 축약된 단어도 포함됐다.

 

그런데 이러한 신조어들이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거리두기’도 마찬가지다. FT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에서 발행되는 주요 신문에서 1995년부터 2019년 말까지 ‘사회적 거리두기(social-distancing)’라는 단어가 163번 쓰였다. 하지만 2020년 팬데믹 이후 이들 신문에선 약 3만1000번 이상 이 단어를 언급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거리두기’가 사회적 단절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물리적 거리두기’ 단어 사용을 권고했지만, 언론들은 같은 기간 1400회가량만 ‘물리적 거리두기’를 사용했다. 한 번 굳어진 단어 선택은 쉽사리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잘 사용하지 않던 ‘묵은 단어’가 부활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휴가·일시해고(furlough)’다. 리시 수낙 영국 재무부 장관은 팬데믹 이후 실업사태를 표현하면서 ‘레이오프(lay off)’가 아닌, 이 단어를 언급했다. 사실 ‘furlough’는 17세기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군인들에게 휴가를 줄 때 사용되던 단어다. 보통 영미권 기업에서 직원들을 해고할 땐 ‘레이오프’를 쓰는데, 다시 상황이 좋아지면 회사에 복귀할 가능성이 큰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furlough)를 사용하면서 실업 사태가 일시적인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단어들도 눈에 띈다. ‘코비디엇(covidiot)’은 거리두기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코로나(covid)와 멍청이(idiot)의 합성어다. 미국 배우이자 가수 마일리 사이러스가 사용하자 대중들도 마치 원래 존재했던 단어인 것처럼 신조어를 일상에서 쓰고 있다.

 

미 ABC방송 윌 리브 기자가 28일(현지시간) 바지를 챙겨입지 않고 방송에 출연한 모습. 윌 리브는 영화 ‘슈퍼맨’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의 아들이다. |트위터 캡처

미 ABC방송 윌 리브 기자가 28일(현지시간) 바지를 챙겨입지 않고 방송에 출연한 모습. 윌 리브는 영화 ‘슈퍼맨’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의 아들이다. |트위터 캡처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홈웨어에 대한 고민도 늘고 있다. ‘아웃핏’과 반대되는 ‘인핏(infits)’과 같은 단어도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집에서 화상회의에 참여하는 회사원들은 상의만 신경쓰면 되기에 ‘어퍼웨어(Upperwear)’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허리 위(upper)만 잘 차려입으면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어퍼웨어의 폐해도 속출한다. 미 ABC방송 기자 윌 리브는 지난 28일 아침 뉴스에서 생방송 화면에 등장했는데 재택근무 중이었던 그는 상의는 재킷까지 차려입은 반듯한 모습이었지만 바지는 챙겨입지 않았다. 화면에 나오지 않을 줄 알고 ‘어퍼웨어’만 신경썼다가 방송에 고스란히 그의 맨다리가 노출되고 만 것이다. 리브는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고 크리스토퍼 리브의 아들이기도 하다.

 

위기를 표현하는 ‘메타포(은유)’도 전투적으로 변했다. 세계의 리더들이 대중 연설을 할 때 전쟁, 적, 싸움 등과 같은 단어가 거침없이 등장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브리핑에서 “미국인은 보이지 않는 적(코로나19)과 전쟁 중”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도미닉 랍 영국 외무장관도 코로나19로 병원에 입원한 보리스 존슨 총리를 향해 “전사(fighter)”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언어학자들은 전염병을 맞닥뜨렸을 때 ‘전쟁’용어를 사용하는 건 위험하다고 지적해왔다. 미 소설가 수전 손택(1933~2004)은 1978년 “병을 전쟁처럼 묘사하는 건 ‘전염병’ 자체에 (혼란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컨트럴타워가 팬데믹을 대처하지 못하는 책임을 ‘병’자체에만 전가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경영대학원 인시아드의 지안피에로 페트리그리엘리 교수는 “전쟁 용어는 인간성을 말살시키고, 사람을 더 상처받기 쉬운 존재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노팅엄대학의 언어사회학 명예교수인 브릿지 놀릭은 “‘전쟁’이라는 표현 대신 ‘여정’이라는 단어를 써야한다”고 조언했다. 위기의 시대 ‘싸움’을 해나가야하는 분위기가 아닌, 대중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함께 이를 대처하기 위한 ‘여정’을 걸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킹스컬리지 런던의 현대언어사전 편찬인인 토니 스론도 정치인들이 전쟁 용어 대신 사람들이 결속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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