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들의 잇단 프리렌서 선언
등록일 2020-04-28 03:44:53 트위터로 보내기 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쪽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문의를 받지않습니다 프린트하기

 

2015년 전후로 잠잠하다 조우종·박은영·박선영 등
작년 이후 또 프리 선언 잇따라

방송환경 변화로 다채널 시대 기회 많고 프리선언 뒤 친정 방송사 돌아와
높은 출연료·인기 거머쥔 사례들 퇴사 선택 이유로 작용하기도

방송사들도 신입공채 줄이고 뉴스·생활정보 제외하면
활약 프로그램도 많지 않아 위상·역할 정체돼 탈출 모색

하지만 기본기+능력 탄탄 아나운서들
여전히 방송에서 주요한 인물
아나운서 다방면 활약 등 역할 고민해야
 

 

“진짜 프리로 나가고 싶대요? 진심으로 한 말이래요?” 몇년 전 한 지상파 아나운서와 한 인터뷰 기사가 나간 뒤 방송사 관계자가 연락을 해왔다. 기사 중 ‘프리랜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는 대목에서 가슴이 철렁했단다. 인기와 명성을 얻은 아나운서들이 프리 선언하는 경우가 늘면서 방송사들도 스타 아나운서 잡기에 온 신경을 쏟고 있는 것이다. “인기가 올라 바빠진 아나운서들은 당직·주말근무 등을 빼주기도 한다”는 게 한 방송사 관계자의 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꾸준히 나가고 있다. 2007년 ‘프리 선언’을 하며 화제를 모은 김성주 <문화방송>(MBC) 아나운서가 시작이었다. 아나운서들이 예능프로그램에 대거 투입된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 시대’가 저물고 2012년 <문화방송> 장기파업 여파로 2013~2015년께 아나운서들은 대거 방송사를 떠났다. 2013년 전현무 <한국방송>(KBS) 아나운서, 문지애·나경은·오상진 <문화방송> 아나운서, 2014년 서현진·박혜진 <문화방송> 아나운서, 2015년 이지애·한석준·오정연 <한국방송> 아나운서와 김경화·방현주·최현정 <문화방송> 아나운서 등이 회사를 나갔다. 이후 잠잠하더니 최근 1~2년 사이 그들은 또다시 떠나고 있다. 지난해 조충현·김민정 <한국방송> 아나운서, 장성규 <제이티비시>(JTBC) 아나운서, 올해 박선영 <에스비에스>(SBS) 아나운서, 박은영·강서은 <한국방송> 아나운서, 신동호 <문화방송> 아나운서가 퇴사했다. 특히 박은영과 박선영은 각 회사의 간판이었다는 점에서 방송사도 적잖이 놀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들은 왜 회사를 떠나는 것일까. 아나운서들의 잇단 퇴사라는 현상에는 방송 환경의 변화와 방송사 내부의 구조적 문제가 동시에 자리하고 있기에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최근 퇴사 뒤 연예기획사와 계약해 화제를 모은 박선영 전 <에스비에스> 아나운서.

 

소속사 제공주된 이유는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 지상파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은 프리 선언을 한 이유에 대해 <한겨레>에 이렇게 답했다. “미디어 환경 자체가 몇년 전과 너무나 달라지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욕구가 커졌다. 지상파보다 종합편성채널(종편) 및 케이블채널에서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해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회사에 소속된 아나운서로서 보여줄 수 있는 모습 외에 더 다양한 매체에서 엄격한 제약 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페이스북, 유튜브 등 플랫폼의 다변화로 콘텐츠가 차고 넘치면서 진행자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졌다. 2011년 종편이 출범하면서 지상파가 구축한 유재석·강호동 투톱 진행자 체제가 무너지고 다양한 이들에게 기회가 돌아간 것처럼 최근에는 그 파이가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상파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이 소속된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시청자가 비슷한 진행자에게 점차 식상해하는 상황에서 진행 능력도 있고 이미지도 좋은 아나운서들은 새로운 블루칩이 됐다”며 “가벼운 진행자가 넘쳐나는 가운데 무게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아나운서가 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상파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자극제가 됐다. 지상파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은 “아나운서는 방송의 가장 전면에 나서기 때문에 소속 방송사의 이미지가 곧 자신의 이미지로 굳어져 타 직종에 비해 이직률이 낮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나테이너가 사랑받던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최근 퇴사 뒤 연예기획사와 계약해 화제를 모은 박은영 전 <한국방송> 아나운서.

 

소속사 제공프리 선언을 했던 이들이 친정으로 돌아와 되레 더 많은 출연료를 받으며 좋은 기회를 얻는 것도 남아 있는 이들을 흔들었다. 김성주나 전현무의 경우 각각 친정인 <문화방송>과 <한국방송>을 포함해 수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김성주는 <문화방송> 1개를 포함해 7개, 전현무는 <한국방송> 1개를 포함해 6개의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이들의 출연료는 방송사 소속 아나운서의 수십배 이상이다. 또 다른 지상파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은 <한겨레>에 “돈 문제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사실상 프리 선언의 가장 큰 이유였다. 비슷한 역할을 하는 연예인은 거액의 출연료를 받는데, 아나운서는 프로그램별로 2만원의 수당을 받는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프리 선언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는 등 달라진 내부 분위기도 자유로운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최근 동료 선후배들이 퇴사하는 것과 관련해 <한겨레>의 질문에 응답한 몇몇 아나운서들은 한결같이 “개인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지상파 아나운서는 “회사를 나가는 건 전적으로 개인의 문제다. 각자가 원하는 삶의 방향이 다른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과거 김성주와 전현무의 경우, 내부 아나운서들의 반발로 방송사를 떠난 지 수년 정도가 지나서야 친정의 프로그램을 맡을 수가 있었다. 한 지상파의 중견급 아나운서는 “자유주의·개인주의 성향이 예전보다 강해지다 보니 각자 자신에게 집중하고 예전만큼 남의 선택에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내부 반발이 컸던 그때를 생각하면 세상이 정말 변한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해 퇴사 뒤 <에스비에스>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김민정·조충현 전 <한국방송> 아나운서.

 

에스비에스 제공과거에는 내부 아나운서들에게도 기회가 많았다. 2010년께 아나테이너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아나운서들은 뉴스, 교양을 넘어 예능까지 섭렵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뉴스나 생활정보 프로그램 말고는 활약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별로 없다. 방송사도 매년 하던 아나운서 공채를 서서히 줄였다. <문화방송>과 <에스비에스>는 2018년 이후로는 아나운서를 뽑지 않고 있으며, <한국방송>은 지난해엔 선발을 했지만 올해는 계획이 없다. 뽑는 인원수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사 자체가 아나운서의 위상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그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와 방송 환경은 달라졌는데 회사 차원에서 이들을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등 다채로운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고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아나운서들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등 스스로의 위상을 높이려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방송인들이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도맡는 상황에서 ‘선택’을 받지 못하면 한계가 있다. 또 다른 지상파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은 “최근 종편이나 케이블에 대한 시청자 선호도가 더 높아지면서 지상파 아나운서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있다. 회사의 부속품 정도로 위상이 추락한 점도 능력 있는 아나운서들이 새로운 도전을 하도록 부추기는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파업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조직 내부의 갈등이 아물지 않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방송>과 <문화방송> 아나운서들의 경우, 몇년 전 지루하게 이어졌던 총파업이 퇴사의 결정적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 방송인은 “<에스비에스>에서 파업이 벌어지진 않았지만 타 방송사의 파업으로 역시 내부 분위기가 바뀌었다. 실제로 달라진 조직 문화 혹은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어 퇴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한국방송> 아나운서실이 양대 노조 편으로 갈리는 등 정치적 대립이 있고, 이에 따른 반목으로 프리 선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아나운서들의 시기·질투·견제 분위기를 못 이겨서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퇴사 뒤 각종 예능에서 활약 중인 전직 아나운서들. 오정연, 전현무, 이지애. 문화방송 제공아나운서는 한때 장래희망 1순위로 꼽히던 선망의 직업이었다. 그런 그들이 “내 능력과 장점을 십분 발휘해 냉정하게 평가받고, 그에 따른 경제적 보상까지 보장받는 것이 시대의 흐름 아니냐”고 말한다. 한 중견급 아나운서는 “아나운서 출신 프리랜서 방송인이 많아지면서 이제 방송사 소속 아나운서의 희소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아나운서의 미래가 불투명한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아나운서라는 직종 자체가 방송사 소속 직군으로 남느냐, 아니면 필요할 때마다 외부에서 수혈하는 프리랜서 직종으로 바뀔 것이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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