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팬데믹' 주범되나? 코로나 막는 마스크 충격 정체
등록일 2020-10-03 12:50:43 트위터로 보내기 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쪽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문의를 받지않습니다 프린트하기

<신데믹 위기> ④쌓여가는 플라스틱 쓰레기


코로나19 확산 이후,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이 이상한 세상이 됐다. 방역을 위해 필수적으로 쓰는 마스크, 알고보면 플라스틱 쓰레기인 마스크가 버려진 뒤 어디에 쌓일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부족하다. 29일 오후 부산역 대합실 알림판에 마스크 착용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 발생한 지 10개월이 지났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바이러스에 대항해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방어책은 ‘마스크’다.

마스크, 인간을 바이러스로부터 지켜주는 고마운 물건이지만, 자연에도 고마운 물건일까?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일주일에 2억 장이 넘는 마스크가 생산된다(9월 셋째주 2억 8452만장).

기본적으로 일회용인 이 마스크는 그대로 일반쓰레기 혹은 의료폐기물이 된다.
영국에서는 한 사람이 1년 동안 매일 일회용 마스크를 착용할 경우 전국적으로 6만 6000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생길 것이란 분석도 있다.


지난달 21일 김녕성세기해변에서 세이브제주바다 활동가들이 수거한 마스크 쓰레기들. 세이브제주바다 제공
 


실제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이후 눈에 띄게 해안가 쓰레기 중 마스크가 늘었다.
제주도에서 해안쓰레기 수거활동을 하는 단체인 '세이브 제주바다'의 한주영(38)대표는 “해안에서 줍는 쓰레기 중 가장 많은 ‘탑5’에 마스크가 새롭게 오를 정도로 버려진 마스크가 많아졌다”며 “모래사장에서 주운 마스크만 모아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더니 사람들이 그제서야 ‘마스크도 심각한 쓰레기가 되는구나’ 하고 알아챈 것 같다”고 말했다.

 

마스크, 플라스틱입니다

지난 7월 제주도 바닷속에서 발견된 마스크와 비닐장갑. 천권필 기자

 


직조구조 때문에 단순한 섬유제품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뜻밖에 마스크도 플라스틱 폐기물이다.

입에 닿는 가장 안쪽은 섬유질, 외부환경에 노출되는 바깥쪽은 방수처리된 부직포 등 재질이지만 마스크의 핵심인 중간층 MB(Melt Blown)필터는 PP(폴리프로필렌) PS(폴리스티렌) PE(폴리에틸렌) 등 플라스틱 섬유로 만들어진다.

필터의 플라스틱은 버려진 뒤 풍화되고 마모되면서 미세플라스틱(지름 5㎜ 이하)으로 변한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날 경우 나노 사이즈(1나노미터(nm)는 100만분의 1㎜)까지도 쪼개진다.

인간의 생명을 지켜주는 마스크는 바다에 들어가 해양생물들의 숨통을 조인다.
최근 화제가 됐던 ‘마스크 끈 질식’ 생물들 문제는 지금 당장 보이는 문제지만, 플라스틱 문제는 당장 눈앞에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직 관련 연구도 부족하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남해연구소 책임연구원 심원준 박사는 “지금은 방역이 우선이라 제어 없이 쓰고 있지만, 코로나19 장기화에 대비한다면 결국 ‘플라스틱 쓰레기’인 마스크를 무분별하게 배출하는 데 대해서도 과학적인 가이드라인, 균형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심 박사는 "바이러스 차단에 매몰돼서 플라스틱 배출을 완전히 무시하면 안된다. 이후 어떤 형태로 인간에게 돌아와 영향을 끼칠 지 늘 생각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코로나 잡다가 플라스틱에 깔려죽을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배달, 포장 및 일회용기 사용이 늘어나면서 전국의 재활용선별장에 들어오는 폐기물의 양이 크게 늘었다. 사진은 지난 24일 부산 강서구 부산시자원재활용센터에 쌓인 재활용폐기물. 연합뉴스

 


코로나19는 마스크 폭증만이 아니라 ‘플라스틱 폭증’도 불러왔다.
사회적 거리 두기 탓에 택배뿐만 아니라 배달?포장 음식이 압도적으로 늘어나고, 다회용기 사용을 권장하던 사회 분위기도 일시에 ‘일회용품 사용’으로 돌아섰다.
늘어나는 쓰레기는 눈에 보이게 쌓이고 있다.

세이브제주바다 한 대표는 “가장 많은 쓰레기는 담배꽁초와 페트병, 일회용컵, 빨대 등등 플라스틱이지만, 코로나 이후 포장용기 등 쓰레기도 훨씬 더 많아진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서해안을 자주 조사하는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도 “코로나 전부터 플라스틱 포장재가 집중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였고, 장마 이후 그간 쌓였던 쓰레기가 한꺼번에 떠내려오면서 숨어있던 쓰레기까지 눈앞에 보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9월 초부터 잡는 추젓(가을새우) 그물을 올리면, 걸려드는 것 중 3분의 2는 새우고, 3분의 1은 비닐이다. 어떤 어민들은 절반까지도 비닐이라고 말한다"며 "비닐은 햇빛과 바닷물에 빨리 삭아 쪼개지는데도 이만큼이나 보이는 건, 실제 흘러드는 비닐의 양은 훨씬 더 많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미 지구에 쌓이는 플라스틱은 한계치에 도달했다.
인류가 만든 모든 플라스틱의 절반은 지난 13년동안 생산됐고, 2030년이면 바다?강?호수로 흘러드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연 최대 5300만톤에 이를 것이란 예측도 있다.
지난 2015년 연 800만 톤이 배출된 것으로 추산돼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unaccceptable)”으로 평가된 지 5년 만에 6배가 넘는 양이 쏟아지는 셈이다.

 

“일회용이 방역? 세척이 방역”
버려진 마스크들. 중앙포토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잡기 위한 대책이 '일회용품 사용'과 동일시되는 것은 위험하다.
한 번 생산되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일회용품을 처리하며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오염물질은 결국 지구와 인간을 더 병들게 만든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코로나19가 쉽사리 끝나지 않는 경우, 이 소비구조가 지속돼선 안된다”며 “지금은 정부도 ‘배달음식 일회용품은 어쩔 수 없다’는 자포자기식 방치를 하는데, 장기적으로는 다회용기 사용량을 다시 늘리는 쪽으로 정책을 짜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그는 “일회용품이 해결책이 아니다. 사람들이 ‘설거지’를 불안해하기 때문에 다회용기를 꺼리는 거라면, 전문 세척업체가 생기는 것도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것”이라며 “‘세척도 방역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전문적으로 살균세척된 다회용기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일회용품 부담금이든, 다회용 보조금이든, 정부가 유도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플라스틱 종착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플라스틱
태평양에 떠도는 플라스틱 쓰레기. EPA=연합뉴스

 


물가로 떠내려간 플라스틱은 궁극적으로 미세플라스틱, 나노플라스틱으로 잘게 쪼개진다.
아직 자연에 흘러들어간 미세플라스틱의 양을 정확히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과학자들은 미세플라스틱이 장기적으로는 생물체에 위험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하고,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심원준 박사는 “지금 일주일에 신용카드 한 장 분량의 플라스틱을 먹는다고 하지만, 2100년이면 일주일에 카드 50장 분량이 넘는 플라스틱을 먹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지금까지는 바다새, 거북이가 ‘플라스틱인 줄 모르고’ 플라스틱을 먹고 해를 입는 동안 인간은 ‘플라스틱인 걸 알아서’ 먹지 않았던 것일 뿐”이라며 “그러나 인간이 배출한 플라스틱이 잘게 쪼개진 뒤에는 인간도 ‘모르고’ 먹게 될 것. 자연의 복수인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미세플라스틱이 얼마나 많이, 어떻게 분포하는지 자세히 파악할수록 사람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원인인 플라스틱 폐기물의 양을 줄이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세플라스틱, 다음 유행병
미국 하와이 해변에 쌓여있는 플라스틱 조각들. AP=연합뉴스

 

인간이 만든 플라스틱은 ‘지구상 인간과 가장 먼’ 곳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만년설 속, 심해 바닥, 남극 주변에서 미세플라스틱 오염에 관한 보고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복잡하고 광범위한 물리적, 화학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생물학적 영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과학자들은 미세플라스틱에 자체적으로 포함된 화학물질은 물론, 미세한 입자가 주변의 오염물질이나 바이러스를 흡착해 ‘슈퍼 전파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산호가 병드는 원인으로 플라스틱에 붙은 병원균이 지목되기도 하고, 이 플라스틱 오염은 보통 4%인 산호 내 질병 발생 가능성을 89%까지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바다에서 발견된 미세플라스틱에 바이러스, 혹은 박테리아가 붙어서 옮겨지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건 양식 산업이다.

홍합·굴·조개 등 상업용 패류에서 이미 미세플라스틱은 흔히 발련되고 있고, 굴 양식장에서 미세플라스틱을 타고 번진 비브리오균에 대한 보고도 있다.
전문가들은 미래에는 양식장 개발 전 미세플라스틱 분포를 우선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고 본다.

건국대학교 안윤주 교수는 “플라스틱의 표면은 소수성(물을 싫어하는 성질)이기 때문에 물 속에 있는 오염물질이 거기에 가서 붙은 다음, 생물체 안으로 같이 들어간다”며 “잘게 쪼개진 플라스틱일수록 몸속으로 잘 들어가고, 완벽한 오염물질 운반체 역할을 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물벼룩, 플랑크톤 등 작은 생물부터 미세플라스틱의 영향을 분석한 연구들이 많아서 사람들이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할 수 있지만, 생태계의 한 부분이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모두 무너지는 것”이라며 “물벼룩, 조개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굉장히 ‘별 것’이라고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고 경고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