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하지 않았던 위험
등록일 2020-04-05 05:00:59 트위터로 보내기 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쪽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문의를 받지않습니다 프린트하기

 

상승과 하락 사이에

상승과 하락 사이에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국민은행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증시 현황판 앞을 지나고 있다. 2020.3.19 hihong@yna.co.kr

지난달엔 과거 전염병 발병 전후의 경험을 바탕으로 코로나19 이후의 금융시장 예상 경로를 조망했다. 결과적으로 지난달의 접근법은 요즘 벌어지는 일들을 전혀 설명하지 못했다. 코로나19가 과거와 전혀 다른 파장을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글로벌 경제가 직면한 리스크는 전례가 없다. 여러 경제 위기가 엄습했지만 요즘처럼 국가·도시 간 이동이 제한되고, 공장 생산 라인이 멈춰서고, 스포츠 행사 등이 중단됐던 적은 없다.

주가 역시 이런 우려를 반영해 급격한 조정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S&P500지수는 2월 중순 이후 5주 동안 31% 급락했다. 사상 최고가에서 그야말로 수직 낙하했다. 1920년대 대공황 국면과 2000년대 서브프라임 버블 붕괴 때도 이런 속도로 떨어지진 않았다.

기록적인 주가 급락은 실물경기의 심각한 후퇴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다. 어느 정도 타격을 받을지 수치로 말하긴 어렵지만 심각한 손실을 입을 것이란 관측은 가능하다. 언젠가는 백신이 개발돼 통제가 가능해지겠지만 최근 경험하는 경제적 손실은 복구되기 어렵다.

 

글로벌 경제 전반의 서비스화가 빠르게 진전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2019년 기준 GDP(국내총생산)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61%이고, 얼마 전까지 세계의 제조업 공장이었던 중국도 서비스업 비중이 54%에 달한다.

서비스업에서의 손실은 일단 발생하면 회복이 어렵다. 자동차와 같은 내구재는 상황이 진정되면 가동률을 높여 더 생산할 수 있고, 소비자들도 미뤄둔 구매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식당 주인, 학원, 필라테스 강사, 스포츠 경기장 치어리더 수입 등 서비스업 손실은 시간이 지난다고 복구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사상 초유의 위기인 만큼 중앙은행과 정부도 신속하게 정책을 내놓고 있다. 미국이 가장 앞서간다.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를 제로로 낮춘 데 이어 양적완화를 발표했다.

한국은행도 사상 최저 수준까지 금리를 낮췄고, 유럽중앙은행과 일본은행도 공격적인 금융완화 정책을 내놓고 있다. 각국 정부도 앞다퉈 재정지출 확대를 공언하고 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직후 시행한 정책들을 매뉴얼로 삼아 중앙은행가들과 관료들이 빠르게 움직인다.

하지만 정책이 파격적인 데 비해 금융시장 반응은 냉소적이다. 부양책이 주가 하락을 전혀 막지 못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중앙은행이 돈을 풀든,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든, 모든 경기부양책은 경제 주체들에 유동성을 공급해 그 돈을 쓰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경제 활동 자체가 막혀 있다. 국가 간 이동이 막히고, 도시가 폐쇄되고, 도시 내 이동도 제한되는 상황에서 풀린 돈이 제대로 쓰일 방법이 없다. 일단 미국과 유럽의 코로나19 확진자 수 증가가 둔화되면서 질병 해결의 가닥이 보일 때 정책 효과가 발휘될 것이다.

최근 급락한 주가가 경제와 기업이익의 후퇴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이 역시 판단이 쉽지 않다. 어떤 방법론으로도 손실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 증시의 경우 시장 자체에 내재된 거품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1,500선까지 밀려 있는 코스피 지수는 15년 전 레벨이고, 주가는 기업들이 당장 손에 쥔 장부 가치보다 싸게 거래(PBR 0.65배)된다.

걱정은 미국발 전염 효과다. 한국 증시야 2011년 이후의 장기 횡보 장세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어 큰 부담이 없지만 미국 증시는 길게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강세장을 이어왔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 증시가 좋을 때 한국 증시가 부진했던 사례는 많다. 미국 증시가 연일 신고가를 기록했지만 한국 증시는 장기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최근 시장 흐름이 그랬고, 한국이 IMF 외환위기로 신음할 때도 미국 증시는 강세장이었다.

반면, 미국 증시가 약세장으로 반전됐을 때 한국 증시가 좋았던 경우는 거의 없다.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코스피 지수는 54% 급락했는데, 당시 한국 경제와 주식시장에 주가지수의 소위 '반토막 하락'이 정당화될 정도로 심각한 모순이 존재하진 않았다. 미국 금융시장에서 서브프라임 위기라는 큰 탈이 나면서 그 여파가 한국으로 전이됐기 때문이다.

미국 증시도 일단 약세장으로 반전될 경우 가장 짧게 조정받았던 기간이 17개월이다. 단기 급락에 따른 일시적 반등은 언제든 가능하겠지만 상처를 추스르고 본격적인 반등세로 돌아서기까진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sigo1@naver.com [신영증권 제공]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